11월의 모든 역사: 한국사

이종하 / 디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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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우리나라 근현대 민족문제 연구와 해명을 목적으로 반민족문제연구소가 설립되었다. 이 연구소는 1995년에 민족문제연구소 이름을 바꾸고, 2001년에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와 함께 본격적으로 『친일인명사전』 발간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 결과, 전체 3권, 2800여 쪽 분량으로 된 『친일인명사전』이 2009년 11월 8일 출간되었다. 이는 『친일문제 연구총서』의 첫 번째에 해당하는 ‘인명 편’으로, 을사늑약 전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 때까지 일본의 국권 침탈, 식민통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해 피해를 끼친 인물 4,389명의 주요 친일 행각과 해방 이후 행적 등을 담고 있다. 『친일인명사전』의 발간은 해방 64년 만에 처음으로 민간 차원의 ‘친일파 청산 작업’이 일단락됐음을 뜻한다. 국가가 하지 못한 역사 청산의 과제를 민간이 먼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해,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기초를 마련한 것이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은 이렇게 외치며 길바닥에 쓰러졌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1948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65년에 평화시장 삼일사에 견습공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작업 환경은 정말 열악했다. 몇 평 되지도 않는 코딱지만한 작업장에 재단판과 여러 대의 재봉틀, 거기에 맞댄 보조판, 그리고 여러 명의 작업자들 그리고 악명 높은 ‘다락방’이 존재하였다. 실로 노동지옥이 따로 없었다. 우연히 근로기준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전태일은 평화시장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데 전부를 바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삼동친목회’를 조직해 노동실태를 조사하는 설문지를 돌렸고, 이를 노동청에 근로조건 진정서와 함께 제출하였다. 회사와 노동청은 작업시간 단축, 임금 인상, 다락방 철거 등을 약속하였지만 수차례 약속을 어겼다. 이에 분노한 22세의 청년 전태일은 결국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희망하였던 것이다.


[책 속으로]

1991년 성철은 다시 7대 조계종 종정으로 재추대되었다. 그러나 ‘가야산 호랑이’로 소문났던 그도 나이를 속일 수는 없었다. 언제부터인지 그의 걸음걸이에는 더욱 힘이 빠지고 호흡은 가빠졌다. 그러더니 1993년 11월 4일 제자들에게 “참선 잘하거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입적하였다. 일주일쯤 지나 성철의 다비식이 거행되었는데, 100여 과가 훨씬 넘는 사리가 수습되었다. -p. 45


1905년 11월 17일 일본 헌병들이 궁궐을 포위하여 분위기가 삼엄한 가운데 어전회의가 열렸다. 이토는 대신들을 일일이 호명해 가며 찬성과 반대를 물었다. 이에 참정대신 한규설이 매국조약이라며 강하게 반대하자 헌병들은 그를 강제로 끌고 나갔다. 하지만 이완용?이근택?이지용?박제순?권중현 등이 찬성해 조약을 통과시켰다. 이것이 보통 ‘을사보호조약’으로 불리던 ‘한일신협약’이다. 조약에 찬성한 다섯 대신들은 이후 매국노의 대명사가 되어 ‘을사5적’이라 불렸다. -p. 154

1901년 「황성신문」의 주필 겸 사장을 맡은 장지연은 이후 본격적으로 언론을 통한 민중의 계몽과 민족정신의 고취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1905년 11월 일제의 강요로 ‘을사늑약’이 맺어지자 울분을 참지 못하였다. 이에 장지연은 11월 20일자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논설을 실어 1만 부를 전국에 뿌렸다. 국민들의 여론은 들끓었고 의병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일제는 기겁하여 재빨리 장지연을 구속하고 신문도 정간시켰다. 하지만 국민들의 거센 압력으로 장지연은 두 달 여 만에 감옥에서 풀려났고 신문도 복간되었다. -p. 177

2008년 11월 28일, 서울서부지법 민사12부는 8개월 동안 식물인간 상태로 있던 김모 할머니의 자녀들이 세브란스 병원을 상대로 “어머니의 평소 뜻에 따라 자연스러운 사망을 위해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달라.”고 청구한 소송을 받아들였다. “병원은 김씨에게 부착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이로써 국내에서 처음으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게 하는 ‘존엄사尊嚴死’가 법적으로 인정되었다. -p.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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